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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요한
에덴지기  2016-01-23 14:30:11, 조회 : 772, 추천 : 65

세례 요한
누가복음 3;1~20                     2016. 1. 17 (주일 낮 예배)

벌써 2016년 세 번째 주일입니다. 올해는 무엇보다 ‘예수님께 칭찬 받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 칭찬 받은 사람들이 몇 명 있습니다.
예수님께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고 했던 백부장이 있지요. “우리 집까지 오실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서 말씀만 하셔도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믿음 있는 말을 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찾아왔던 수로보니게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에게 줄 떡을 개에게 줄 수 없다.” 그랬더니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고 놀라운 믿음의 말을 합니다. 예수님도 감탄하시면서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고 칭찬하셨습니다.
베드로도 큰 칭찬 받은 적이 있지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가 멋진 대답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이 그 대답을 들으시고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고 칭찬을 하십니다. 심지어 “너는 베드로-즉 반석-이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는 놀라운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칭찬을 받은 사람이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누가복음 7:28에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났잖아요. 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 바로 요한이라고 칭찬하신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칭찬을 받았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세례 요한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세례 요한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습니다.
3절 말씀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아멘. 마태복음에 보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하고 외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그냥 누군가가 길에 서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외친다고 해서 사람들이 자복하고 와서 세례를 받을까요? 지금도 지하철에 가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외치는 분들 있을 거예요.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죄를 자복하고 무릎 꿇고 세례 받는 모습을 본적은 없어요. 확성기에 대고 외쳐도 그냥 귀찮다는 듯이 피해서 지나가지요.
그러니까 세례 요한이 외칠 때 사람들이 찔림을 받고 회개하면서 요단강에 와서 세례를 받았다는 건 참으로 대단한 겁니다. 뭐가 다른 걸까요? 적어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세례 요한이 먼저 정결의 본을 보였다는 겁니다.

➀ (정결)의 본을 보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세례요한은 광야에 살았습니다. 집이 없었다는 거죠.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습니다. 그냥 들판에 있는 거 먹고 살았다는 뜻입니다. 세상 부귀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일에 힘썼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과는 달리 정결하게 사는 요한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하는 건데’ 하는 깨달음이 오니가 그의 말대로 자복하고 세례를 받은 거지요.
우리도 세례 요한처럼 정결함의 본을 보이기 원합니다. 예수 믿어서 큰 집에 살고, 예수 믿어서 맛있는 거 먹고, 그것도 감사한 일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큰 집에 살기 위해 예수 믿는 건 아니잖아요. 맛있는 거 먹자고 예수 믿는 건 아니잖아요.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나도 저 사람처럼 정결하게 살아야 하는데....’ 이런 마음이 들도록 우리가 정결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큰 집에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사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인 줄 믿습니다.

➁ (내가)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라고 외치는 세례 요한이 더러운 죄 가운데 있다면 그 말이 힘이 있을 리가 없지요. 다른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회개하고 깨끗해져야 합니다.
회개가 뭐지요? 오늘은 특별히 온전한 회개의 정의를 이렇게 내려보겠습니다. 온전한 회개는 자기가 죄 지은 것을 마음으로 인정하고, 입으로 자백하고, 그 죄에서 돌이키는 것이다. 우리 한 번 따라하실까요? [우리의 죄를 / 마음으로 인정하고 / 입으로 자백하고 / 행동으로 돌이키자] 아멘.
먼저 마음으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심으로 죄라고 여기고 애통해 하는 겁니다. 어떤 분은 입으로는 회개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진정으로 인정하지 않아요. "이런 건 누구나 다 하는 거지. 이런 거까지 안하고 어떻게 살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혹시 벌 받을지 모르니까, 아니면 복 받는데 지장이 있을까봐 입술로만 회개하는 거예요. 이건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벌받을까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혹은 복 받으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회개의 진정한 동기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 너무나 괴롭고 마음이 찢어지기 때문에 눈물로 죄를 자백하며 주님께 돌아오는 거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만 진정한 회개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겁을 주면서 회개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먼저 십자가의 사랑을 보여주시고 지금도 한없는 사랑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사춘기 아이들을 보면 잘못해서 부모님에게 야단을 맞으면서도 뉘우침이 없어요. "잘못했다고 해!" 하면서 때리면 이를 악물고 "잘못했어요." 말은 하지만 속으로는 "난 억울하다. 두고 보자" 그런대요. 진정한 회개가 아니지요. 진정한 회개는 사랑을 깨달을 때만 있습니다.
어떤 고등학생이 부모님 잔소리가 싫어서 집을 나가 버렸어요. 그럴 줄은 몰랐는데 어머니가 기가 막힙니다. 한 달을 수소문 해가지고 겨우 아이가 있는 집을 찾았습니다. 계단 밑에 있는 조그만 창고를 하나 얻어가지고 거기서 자취를 하고 있는 거예요.
들어가 보니 아들은 없고, 방안이 엉망이에요. 냉장고는 텅 비어있고 옷은 여기저기 벗어 내던졌고 난장판입니다. 어머니가 하루 종일 다 청소하고 빨래하고 정리를 해줍니다.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냉장고를 가득히 채워 놓습니다. 그리고는 냉장고 문에다가 그 아이의 어릴 때 사진을 붙여놓고 왔습니다. 어머니가 그 아들을 안고 너무 좋아서 활짝 웃는 사진입니다.
아들이 저녁에 돌아와서 정리된 집을 보고 냉장고에 붙어 있는 사진을 보고 눈물이 맺히더니 결국 통곡을 합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데 내가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구나." 깨달은 겁니다.
여러분, 그 어머니의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언제든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내 맘대로 사는 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나 아프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 십자가의 그 사랑을 기억하고 언제든지 돌이키시기를 축원합니다. “진정한 회개의 동기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 세례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였습니다.
8절 함께 봉독합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아멘.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회개했으면 달라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누가 나에게 잘못을 했어요.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기에 용서해 주었는데 아무 변화가 없이 또 그런다면 황당하지 않겠습니까? 아주 괘씸하거나 아니면 ‘누구 놀리나?’ 이런 생각이 들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놀리거나 괘씸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이런 자들을 향해서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고 말씀하십니다. 9절 함게 봉독하겠습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아멘. 도끼에 찍혀 불에 던져지는 나무가 되면 안 되지요. 회개하고 돌이켜 좋은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합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시에 세례 요한의 말을 듣던 사람들도 그렇게 물었어요. 그때 세례 요한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11절 봉독할까요?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아멘.
➀ “(나눠)주라.” 하십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지요?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되도다.” 받는 것도 기쁘지만 주는 기쁨은 더 큽니다. “계속 누군가에게 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것보다 “계속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게 더 큰 축복이지요. 게다가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주라, 그리하면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네게 안겨 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또 더 많이 나눠주는 자가 되고, 그러면 또 주님이 더 많이 주시고, 그러면 더 많이 나눠주고.... 평생 점점 더 많이 나눠주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➁ (욕심)내지 마라.
세리 들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와서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세례 요한이 대답합니다. 13절 함께 봉독합니다.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아멘. 아시는 대로 당시 세리는 백성들에게 세금을 걷어서 로마에 갖다 바치는 사람입니다. “1인당 만원씩 걷어라.” 하면 2만원씩 걷어서 만원은 로마에 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가졌어요. 따로 월급이 거의 없고 그 대신 세리가 얼마를 거두어 가지든지 로마에 낼 것만 내면 묵인했다고 해요. 그래서 대부분의 세리는 최대한 백성들을 괴롭혀서 많은 세금을 걷어 축재했습니다. 그랬던 것을 회개하고 이제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살아요? 백성들이 ‘야, 저런 세리가 다 있네.’ 하고 고마워서 주면 먹고, 안 주면 안 먹고 그래야겠지요. 정말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거지요. 그게 바로 광야의 삶이에요. 세례 요한이 광야에 살았다. 인생은 광야 길이다. 이게 힘들고 고달프다는 뜻이라기보다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삶이라는 뜻이에요. 넉넉하다고 재물을 의지하거나 없다고 욕심내는 게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사는 겁니다. 이게 진짜 회개하고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삶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면 언제나 마음에 평강과 기쁨의 열매를 맺으며 살게 될 것입니다.

➂ (족한) 줄 알라.
14절 함께 봉독합니다.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아멘. 전에는 힘이 있다고 남의 것을 빼앗아 치부했지만 이제 회개하고 있는 것을 족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족하게 여기는 사람이 부자입니다. 아무리 많이 가지고도 더 가지려는 사람은 늘 불평과 욕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평안이 없고 감사가 없습니다. 그러나 족하게 여기는 사람은 적은 것을 가지고도 감사할 수 있고, 나누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많아서 행복한 게 아니라 자족하는 지혜가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 세례요한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이 오실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4절 봉독합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아멘. 세례 요한에게 맡겨진 사명은 예수님이 오실 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꼭 세례 요한에게만 주신 말씀은 아닙니다. ‘너희는’ 이라고 한 것을 보면 우리에게도 주신 말씀이지요. 우리도 똑같이 다시 오실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답게
➀ (겸손)하게 주님을 높입니다.
사람들이 요한의 삶과 말과 행적을 보고 이 사람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그리스도 메시아가 아닐까? 생각하였습니다. 요한이 그 생각을 알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다같이 16~17절 말씀 봉독할까요?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아멘.
사람들이 자신을 칭찬할 때 주님을 잊어버리면 교만해지기가 쉽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을 높이려고 할 때 겸손하게 “나는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하고 주님을 더욱 높였습니다. 우리도 언제나 겸손하게 주님을 높이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회개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되면 그럴 기회가 많이 올 거예요. 욕심 내지 않고 감사하면서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면 사람들이 “어쩜 그렇게 늘 기뻐하고 베풀며 사세요. 정말 대단하세요.” 그럴 거예요. 그러면 그때 “다 주님의 은혜지요. 주님이 더 좋은 걸 주시는 걸요.” 이렇게 주님을 높이고 복음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매일 더 가지려고 욕심내면서 남과 다투고 늘 불평과 원망 가운데 살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당신은 그만하면 가진 것도 많은데 왜 이렇게 욕심과 불평이 많아요?” 그러겠지요. 거기에다 “이게 다 주님의 은혜지요” 그럴 수는 없잖아요.  

➁ 세례 요한은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20절에 보니까 그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진리를 말하다가 옥에 갇힙니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그 이유가 더 분명하게 나옵니다. 헤롯왕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아 자기 아내를 삼았습니다. 그 일을 옳지 않다고 말했기 때문에 헤롯이 그를 옥에 가두었고 결국 목을 베어버립니다.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회개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갈 때 고난도 있고 심지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악이 판을 치는 이 세상에 살면서, 죄악과 맞서다가 고난을 당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그때 내가 진리를 말하면 옥에 갇힐 걸 알고 지혜롭게 적당히 타협했지.” 그러면 이상하잖아요. 우리도 똑같습니다. “그때 내가 진리를 말하면 손해 볼 걸 알고 지혜롭게 거짓말을 했지.” 그럴 겁니까? 말씀대로 살다가 고난당하게 되면 그냥 고난당하는 게 더 영광인 줄 믿습니다.
하다못해 군대 2,3년만 갖다 와도 힘든 데서 군 생활 한 사람이 더 자랑하잖아요.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서 인생을 되돌아볼 때 이 세상에서 7,80년 편하게 살다 온 것이 결코 자랑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고난 중에도 전도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며 (사명)을 다한 것이 자랑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곧 다시 오실 텐데 비록 사명의 길이 고난의 길일지라도 세례 요한처럼 주의 길을 잘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582. 어둔 밤 마음에 잠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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