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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유에 나신 예수님
에덴지기  2015-12-27 18:19:02, 조회 : 600, 추천 : 58

구유에 나신 예수님
누가복음 2;1-7                        2015. 12. 20 (주일 낮 예배)

얼마 전에 ‘The Richest’라는 잡지에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호텔 Top 10’을 발표했는데요. 한번 상상해보세요. 세계에서 가장 비싼 호텔은 하룻밤 자는데 얼마일까요? 세계에서 가장 비싼 호텔은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프레지던트 윌슨 호텔의 로얄 펜트하우스 스위트룸인데 하룻밤 잠자는 가격이 무려.....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83,200달러, 그러니까 9,150만원이라고 합니다. 물론 우리는 이 정도 액수에 놀라지 않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깜짝 놀랄 액수입니다. 이제껏 그 방에서 잔 사람은 빌 클린턴과 빌 게이츠 정도였다고 합니다.
스위트룸 하나가 544평에 방이 12개라고 합니다. 수행원들까지 다 함께 들어가는 거지요. Top 10까지 주~욱 보니까 대부분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건 기본이고, 전용 요리사, 피아니스트, 마사지사가 딸려있고, 어떤 호텔은 방 안에 농구장도 있어요.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야, 나도 그런 데서 하룻밤이라도 자 보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실 수도 있겠죠. 그러나 이 성탄 절기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첫날밤을 보내신 숙소를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기껏해야 4년이나 8년짜리 대통령도 그런 호화스런 곳에서 묵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과연 어디에 묵으셨습니까?
7절 말씀 함께 봉독할까요?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구유에 뉘었다고 했습니다. 몇 천만 원짜리 방은 고사하고 그냥 싸구려 방도 하나 없어서 구유가 예수님의 첫 숙소가 되었습니다. 구유가 뭐지요? 나무토막 같은 거, 속을 파내서 소나 말의 밥을 주는, 밥그릇이지요.

따뜻한 안방에서라도 태어나셨으면 좋았을 텐데 왜 많고 많은 곳 중에 더럽고 초라한 구유에 나셨을까요? 사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본인이 원하시면 얼마든지 화려하고 좋은 데를 골라서 태어나실 수 있었을 겁니다. 예를 들어, 당시 세계의 심장부인 로마에서, 아니면 이스라엘에서 태어나더라도 중심부인 예루살렘에서, 이왕이면 왕궁에서, 아니면 훌륭한 저택에서 태어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들레헴의 한 여관 구유에 태어나셨습니다. 어쩌다가 우연히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전능하신 주님께서 구유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이유가 있겠지요? 왜 예수님은 하필 그런 곳을 택해서 오셨을까요? 예수님이 구유에 나신 그 자체가 성탄의 메시지입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 어느 여관 말구유에 태어나셨다고 하는 것은 인생이 (나그네)임을 보여줍니다.
여관은 나그네의 집입니다. 예수님이 나그네가 머무는 여관집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은, 예수님 자신이 이 세상에서 이 육신을 입고 영원히 거할 것이 아니요 잠깐 다니러 왔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 황제가 온 나라에 칙령을 내렸습니다. 인구조사를 해야 하니 모든 사람이 다 고향으로 돌아가 호적등록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도 마리아와 함께 자신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그곳이 진정한 고향이 아니었습니다. 그곳 역시 머무를 곳이 없는 타향이었습니다.
우리의 고향은 이 (땅)이 아닙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입니다. 강화에서 태어나서 강화에서 계속 살았기 때문에 강화가 고향인 것 같지만 진정한 고향, 마침내 돌아가야 할 본향은 오직 하늘나라입니다.

구유에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고향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와! 천국이 우리 고향이라니. 어떻게 천국이 우리의 고향이 되었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집이 내 집이지요?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친구에게 “야, 우리 집에 놀러와” 그래요. 그게 자기 집이에요? 아버지 집이지만 아버지 집이 내 집이지요.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되니까 천국이 내 집이 되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요?
요한 1:12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아멘. 예수님을 믿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요. 믿는 자를 다른 말로 뭐라고 해요? 영접하는 자. 여러분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까?

크리스마스에 관한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다 알지만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지요.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4학년 아이들이 성탄절 연극을 해야 하는데 그 중에 랄프라는 어린이가 있었습니다. 정서장애가 있는 아이였어요. 말도 더듬고 대사도 못 외우니 어떻게 연극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아이가 너무 연극을 하고 싶어 해요. 선생님도 랄프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 배역을 하나 맡겼습니다. 여관 주인. 아주 간단한 역할이에요. 요셉이 만삭이 된 아내를 데리고 와서 여관 문을 두드릴 때 한 마디만 하면 되요. “방 없어요!” 요셉이 또 “제 아내가 아이를 낳을 것 같으니 방 하나만 주세요.” 그러면 또 “방 없어요.” “아무 방이라도 좋으니 제발요!” 그러면 또 “방 없어요!” 세 번만 하면 됩니다. “방 없어요!” 랄프는 열심히 연습을 했어요.
연극이 시작 되었습니다. 드디어 요셉이 마리아를 데리고 여관 앞에 도착했습니다. 여관 문을 두드립니다. 주인 역을 맡은 랄프가 나와서 연습한 대로 또박 또박 말을 했습니다. “방 없어요!” 요셉이 다시 사정을 합니다. “제 아내가 곧 아기를 낳을 것 같습니다. 방 좀 주세요?” “방 없어요!” 이제 한번만 더 하면 돼요. 요셉이 “이 추운데 어디 가서 아기를 낳겠어요. 아무 방이라도 좋으니 제발이요.” 이 이야기를 듣자 갑자기 랄프는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하기를 “그러면 제 방으로 오세요!” 연극은 각본대로 되지 않았지만 모두가 다 숙연해 지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방 없어요.”가 아니라 “제 방으로 오세요!”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그냥 말로만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내 마음에 들어오세요.” 이게 아니라, 정말 예수님께 내 방을 내어드릴 수 있는 사람만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방 없어요.”가 아니라 “제 방으로 오세요!” 이게 바로 성탄의 메시지입니다.

둘째로, 말구유에 태어나신 것은, (누구나) 예수님께 올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왕궁에 태어나서 금 침대 비단 이불에 누워 있었다면 목자와 같이 평범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은 감히 찾아가볼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구간 말구유에 지푸라기를 이불삼아 누워 계시니, 동방박사 같은 외국인도, 목자 같은 평민도 누구든지 찾아가 만날 수 있고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누구든지 그 앞에 나오는 것을 막지 않았습니다. 밤중에 찾아온 율법학자와 부자 청년도 만나주셨습니다. 그런가하면 연약한 어린이와 여인들도 물리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마태복음 11:28 함께 봉도할까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아멘. “다 내게로 오라.” 모든 사람들을 불러주셨습니다. 특별히 세리라도, 창녀라고 배척받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별명이 ‘죄인의 친구’였고, 예수님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유식하거나 무식하거나, 또는 그 사회적 입장과 정치적 견해가 어떠하든지 관계없이 다 모이는 곳입니다. 누구든지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서로 용납하고 안아줄 수 있는 곳이 바로 말구유에 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 공동체입니다.

셋째로, 말구유에 나심은 (겸손)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것도 비천한 마구간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시면서 제자들의 발까지 씻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말구유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이 계절에 우리는 낮아져야 하겠습니다. 겸손해져야 하겠습니다. 겸손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남)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거북이가 날고 싶어서 거위 두 마리에게 .... 나무 막대기를 양쪽에서 거위가 물고 거북이는 가운데서 그걸 물고 날아가.... “와 대단한데,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군” 거위는 웃기만 해. 거북이는 내 아이디어인데 거위가 칭찬받는 것 같아서... 결국은 못 참고 “이거 내 아이디어야.” 떨어져 죽었다.]
기억합시다. “나를 드러내는 순간 떨어져 죽는다.”

가장 귀한 예수님이 가장 낮고 천한 곳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낮고 천한 게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교만이 문제입니다. 부자라고 교만하고, 많이 배웠다고 교만하고, 높은 자리에 있다고 교만하면 그게 문제입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연약하고, 못 배웠기 때문에 겸손하면 오히려 감사한 일입니다. 왜? 내가 부족함을 알기에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겸손이에요.
겸손이 뭐라고요? “(나)의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낙심하고 열등감 가운데 사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어떤 분이 중동 사막지대에 있는 거대한 유전 시설에 가보았답니다. 어마어마한 시설을 이용해서 땅 속에 묻혀있는 원유를 끌어올리는데 그 넓은 지역에서 뽑아 올린 원유가 한 군데로 다 모이더랍니다. 너무나 신기해서 이 많은 원유들이 어떻게 이렇게 한 군데로 모일 수 있냐고 물었대요. 그랬더니 그곳에서 안내하는 분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가 가장 지대가 낮거든요.” 낮은 곳으로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넷째로, 예수님이 구유에 오신 것은 그가 (생명)의 양식이 됨을 나타냅니다.
구유는 쉽게 말하면 소나 말의 밥통이지요? 예수님은 먹이를 담는 밥통에 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정 당신의 삶 전부를 우리에게 밥으로 내어 주어 우리가 그것을 먹고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35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 하셨습니다.
여기 먹는다는 말과 믿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먹는다, 믿는다.’ 이것은 생명을 얻는 행위입니다. 밥을 먹음으로 밥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육신이 생명을 얻습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예수를 영접할 때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의 영이 생명을 얻게 됩니다. 성찬식을 통해서 우리는 이것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먹는 것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해 줄 수 없습니다. 내가 대신 먹어 준다고 내 남편이 살아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믿음도 대신 믿어 줄 수가 없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영접할 때에만 그가 내 안에 계셔서 나의 생명이 되시고 나의 능력이 되십니다.

미국 콜로라도 주에 3백년이 된 큰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죽어갑니다. 그 나무를 살리고자 전국의 유명한 식물학자들이 총출동해서 살려보려고 애썼지만 허사였습니다. 나중에 나무를 베어내면서 그 원인이 밝혀졌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딱정벌레 몇 마리 때문에 그 큰 나무가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것 같지만 우리 안에 있는 죄 때문에 인생이 망가지고 멸망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죄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인생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예수님이 이것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자신이 죽어서 우리를 살리시려고 생명의 떡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생명의 떡을 먹고 우리가 살았습니다.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우리 안에 넘치고, 또 모든 사람들에게 이 기쁜 소식 알리는 성탄절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122. 참 반가운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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