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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에덴지기  2015-06-14 12:27:16, 조회 : 513, 추천 : 80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이사야 52;1~12                         2015. 6. 14 (주일 낮 예배)

오랜 가뭄과 메르스로 인하여 고통 받는 이 나라 위에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절대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 백성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은 포로생활로 고통 받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예루살렘을 재건하실 위대한 계획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인도하십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패망한 바벨론을 떠나서 하나님과 함께 예루살렘을 세우고 그곳에서 놀라운 축복의 삶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인 우리를 위해서도 최상의 계획을 세우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우고 우리를 인도해 주셔도 안 따라가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잘 따라감으로써 예비하신 축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몇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 자각해야 합니다. (1~2절)
1절 함께 봉독합니다.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아멘.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그랬어요. ➀ (깨어)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잔치를 준비해 놓았어도 자고 있으면 누릴 수가 없습니다. 먼저 깨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깨는 것은 늘 기도와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직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립니다. 너무나 마음이 간절하니까 제자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하시고 조금 더 올라가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기도하고 내려와 보니 제자들은 자고 있었어요. 자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하고 책망하십니다. 깨어서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의 영이 깨어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 안하면 영이 잠들어 있으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따라서 인도함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몽유병자가 잠자면서 걸어가듯이 그런 삶을 사는 것입니다.

기도로 깨어야 합니다. 기도할 때 내가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기도할 때 내가 사명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사는지도 모르는 채 그냥 하루하루 목숨을 연명하다가 어느 날 죽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의미 없이 살다가 죽으려고 태어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렇게 살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게 아닙니다. 우리는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원하고 세상을 복되게 할 사명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➁ (털어 버려)야 합니다.
2절 함께 봉독합니다. “너는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아멘.  
“너는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 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생활 속에서 더러운 것을 다 털어내 버립시다. 티끌같이 사소한 죄까지도 깨끗이 털어버립시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 정도야 다 하고 사는 거지.” 이게 문제입니다. “에이, 남들도 다 하는데...” 아니오. 하나님의 심판은 상대평가가 아닙니다. 절대 평가입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뭐” 하고 따라가는 길이 바로 넓은 길입니다. 넓은 길로 가면 어떻게 되지요? 멸망입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다고 따라가다가 넓은 길, 멸망의 길로 가는 자가 되지 맙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티끌같이 작은 죄니까 괜찮으려니’ 하고 행했던 그 죄 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가로막는다는 겁니다. 왜 기도해도 응답이 안 돼요? 그 죄가 가로막고 있어서. 왜 주님이 인도하시는데도 못 듣고 엉뚱한 데로 가다가 고난을 자초해요? 그 죄 때문에.
그래서 주님께서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티끌을 털어버릴지어다.” 그리고 또 중요한 말씀 한 마디 더 하시지요.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➂ 줄을 스스로 (풀어)야 합니다.
여러분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목을 조르고 있는 과거의 모든 것을 풀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서 현재를 망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이래 뵈도 왕년에는 잘 나가던 사람이라고~” 이게 문제입니다. ‘내가 서울대 나왔는데 이런 시시한 일을 어떻게 해?’ 하면서 평생 백수로 사는 사람도 있어요.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거죠.
거꾸로 열등감에 빠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난 과거에 공부를 못했으니까, 혹은 전에도 하는 것마다 잘 안 됐으니까 앞으로도 잘 안 될 거야.”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새로운 계획을 세우시고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과거에 매여 있다면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를 사로잡고, 우리의 목을 조이고 있던 과거의 줄을 모두 풀어버리십시오. 그리고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새 역사를 이루어 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전하는) 자가 아름답습니다.
7절 말씀 함께 봉독합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아멘.
요즘 메르스로 인해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참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좋은 예방 백신이나 치료제가 빨리 나오면 좋겠습니다. 만일 치료제를 개발해서 먹고 나았다면 다른 환자들에게도 주면서 “이거 빨리 드세요. 이거 먹으면 낫습니다.” 하지 않겠습니까? 자기는 먹고 나았는데 약을 감추고 다른 환자들에게는 주지 않는다면 아주 나쁜 사람이지요.
마찬가지로 나는 구원 받았는데 전하지 않는다면 나쁜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 그 구원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발걸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이익을 찾아가고, 재미를 찾아가는 발걸음이 아니라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전도하는 게 쉬워요? 어려워요? 쉬운 분도 있고 어려운 분도 있어요. 쉬운 분은 그냥 전도하면 되는데 어려운 분이 문제지요. 전도하기가 왜 어려울까요? 첫째는 기껏 예수 믿으라고 복음 전했는데 거부하니까 싫은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거부당하는 걸 싫어하거든요. 만일 “예수 믿으세요.” “아, 그러지요.” “교회 나오세요.” “당장 나갈게요.” 그러면 전도하는 게 왜 싫겠어요. 신나서 전도하지요. 그런데 실제로 전도해보면 99% 거부하거든요. 그래서 어렵고 싫은 거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래도 1%라도 믿을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은 거부하는 사람도 계속 전도하면 언젠가는 예수 믿게 된다는 거예요. 그 분이 하늘나라에 가서 너무너무 고마워 할 겁니다. 그러니까 전도해도 예수 믿지 않더라고 낙심하지 마시고 꾸준히 전하시기 바랍니다. “소식을 전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아름답다.”고 했지, 설득해서 결단시키는 입이 아름답다고 한 게 아닙니다.
엊그제도 오랜만에 동네 전도하러 나가보니까 집이 죄다 비었어요. 두어 명  밖에 못 만났어요. 그분들이 예수 믿겠다고 하지도 않았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복음 전하러 가는 발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에요. 결과에 관계없이 전하는 그 자체를 하나님이 귀하고 아름답게 보신다는 말씀입니다. 열매 맺는 건 하나님이 하세요. 우리는 그저 열심히 씨 뿌리고 가꾸면 되는 거죠.

‘개의 전도’라는 글이 있어요. 개가 전도했다는 거죠. 신기해서 뭔가 하고 읽어보니까 중국 산둥 성 출신 병사들이 상해에 주둔했을 때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 개 한 마리가 종이 몇 장을 입에 물고 주둔지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병사들이 쫓아가 그것을 빼앗아서는 읽어 보니 그것은 성경의 일부분이었습니다. 그 내용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병사들은 개의 뒤를 밟아 주둔지 근처에 있던 병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병원 직원에게 개에게서 빼앗은 성경의 속지를 내보이며 이런 종류의 책이 더 없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기독교인이었던 원장과 직원들은 그 군인을 환영하면서 성경책을 여러 권 내주었습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서 나중에는 고포드 박사와 중국인 선교사 한 명이 그 부대를 방문하게 되었고 결국 2천 명의 병사들이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하였다고 합니다. 말 못하는 개도 전도했다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전도할 때 하나님께서 귀한 열매 맺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그저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이 되기를 원합니다.

전도하기 어려운 또 한 가지 이유는 예수 믿으면서 별로 자랑할 만한 경험이 없기 때문인 거 같아요. “저는 말을 잘 못해요.” 하시는 분도 특별히 자랑할 만한 경험을 하면 얼마나 말씀을 잘하시는지 몰라요. “어느 식당에 갔더니 맛도 너무 좋고 가격도 싸더라.” “우리 손자가 얼마나 똑똑한지 몰라. 다섯 살인데 글을 좔좔 읽어” 만나는 사람마다 이야기해요.
우리도 예수 믿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계속 경험하면 전도하는 일이 별로 어렵지 않아요. 주변에 염려가 많은 분들을 만나면 “저는 예수님 믿고 나서 마음이 참 평안해졌어요. 속에서 알 수 없는 기쁨이 밀려와요.” 이야기하게 됩니다. 어떤 일로 인해서 어려움 당하는 분을 보면 “저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이루어주셨어요.” “하나님 말씀대로 용서하고 화해했더니 가정이 천국이 되었어요.” “남편도 예수님 믿고 얼마나 사람이 달라졌는지 몰라요. 이제 정말 행복해요.”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도 계속 염려하고 다투고 욕심내고 살면 별로 할 말이 없지요. 좋은 소식, 평화의 소식을 전할 게 없으니까.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하고, 복을 주셔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뭐라고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가로막혀서. 무엇으로 가로막혔어요? 우리의 죄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전할 소식도 없어요. 그래서 11절에 죄와 부정한 것에서 떠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 떠나야 합니다.
11절 봉독합니다.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 아멘.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그랬어요. 어디를 떠나요? 하나님이 새롭게 예비하신 예루살렘의 주인공이 되려면 바벨론을 떠나야 합니다. 예루살렘이 아무리 좋아도 바벨론을 떠나지 않고는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바벨론을 떠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➀ (부정)한 것에서 떠나야 합니다.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하였습니다. 부정한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누가 더러운 것을 묻히려고 해도 피하고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자각하고 아버지를 닮아 스스로 정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하신 하나님이 예비하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번에 황교안 국무총리 내정자에 관한 기사를 보면서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분이 신학을 하실 만큼 믿음이 좋은 분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처럼 “정말 털어도 먼지가 안 나오는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내심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전관예우 받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축재한 것도 드러났습니다. 넓은 길을 택했던 거죠. 아쉬운 부분입니다. 뭐 그래도 여당이 밀어붙이고 있으니까 국무총리가 되실 모양입니다. 앞으로 그 분이 잘하면 별 일 없겠지만 잘못하면 기독교가 함께 욕먹을 것입니다.
그분 뿐이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기독교가 욕먹고 하나님이 욕먹습니다. 제가 한 번 생각해봤어요. ‘만일 내가 국무총리 내정자가 되어서 청문회를 한다면 과연 털어도 먼지가 안 나올까?’ 어떨 거 같아요?^^ 엄청나게 나오겠지요. 하지만 먼지든 굵직한 건더기든 감추지 말고 주님 앞에 자백하고 회개하고, 삭개오처럼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부정 축재한 것이 있으면 4배로 갚고 주님을 따라야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남들도 다 하는데” 하고 무감각해지지 않도록 정말 열심히 기도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위치가 되면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부정한 것은 일체 손대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거라도 부정한 것에서 떠날 때에야 비로소 주님과 함께 거룩한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될 줄 믿습니다.

➁ (익숙한) 것에서 떠나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아름다운 계획을 세우시고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시는데, 여전히 멸망한 바벨론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포로생활보다 자유가 훨씬 좋은데 왜 많은 사람들이 무너진 바벨론에 여전히 남아있을까요?
자유와 구원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포로생활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지금 이대로가 좋은데.” 익숙하니까. “예루살렘에 가려면 갈 길도 멀고, 가다가 전쟁으로 죽을 수도 있고, 예루살렘에 가 봐야 거기는 지금 폐허가 되어 있어서 다시 재건해야 한다는데 공사하려면 돈 들고 힘들잖아.” 이런 생각입니다.
게다가 포로생활 70년이면 예루살렘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다 죽었을 때입니다. 지금 남은 사람들의 고향은 오히려 바벨론입니다. 그러니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기쁨을 몰라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영적인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익숙한) 것에서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예화. 비커 속의 개구리 이야기 아시지요? 찬물에 살아있는 개구리를 집어넣고 서서히 밑에서 가열을 하면 물이 서서히 따뜻해지니까 기분 좋게 있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익어버립니다. 죽는 거예요. 어느 시점에 뛰어 나왔으면 사는 건데, ‘이대로 괜찮은데 뭐...’ 하다가 죽었습니다.]
편안하고 익숙하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편하고 익숙하기에 오히려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내 마음대로 내 습관대로 하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죄 가운데 열악한 영적 상황 속에 있어도 익숙해지면 편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비커 속의 개구리처럼 죽어가고 있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새로운 환경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옆에서 “빨리 뛰어나와! 안 그러면 죽어!” 외치는데도 “난 괜찮아!” 하다가 결국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는 겁니다.

여러분, 익숙함과 편안함에 머물지 마시고 늘 주님께 묻고 주님의 말씀에 과감하게 순종하는 영적인 도전을 하시기 바랍니다. 되는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도전이 필요합니다. 더 뜨거운 기도에 도전하고, 복음 전하는 삶에 도전합시다. 작은 죄도 버리고 온전히 정결해 지는 것에 도전합시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주님과 함께 새 역사를 이루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421. 내가 예수 믿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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