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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역사하는 자들
에덴지기  2014-10-19 14:39:56, 조회 : 398, 추천 : 45

함께 역사하는 자들
골로새서 4;7~18                    2014. 10. 19 (주일 낮 예배)


여러분, 그 동안 모두 평안하셨지요? 저도 여러분이 기도 많이 해주셔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다녀왔습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에 가보니까 그새 아이들이 다 자라서 이제는 우리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구경도 시켜주고, 음식도 사주고, 공연도 보여주고 그래서 아주 효도를 잘 받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위키드’라는 뮤지컬을 보았는데 제가 영어를 별로 잘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무대 위에서는 배우들이 연기도 하고 노래도 합니다. 무대 아래서는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합니다. 지휘자는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을 보면서 오케스트라 지휘를 합니다. 연주자들은 배우들이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하나가 되어서 너무나 아름답고 멋지게 공연을 하였습니다. 무대장치라든지 조명을 담당한 제작진도 여러 명이었는데 0.1초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맡은 일들을 해내었습니다. 연기자와 오케스트라와 모든 제작진이 하나가 될 때, 뮤지컬을 잘 모르는 저 같은 사람도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특별한 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도 이제 골로새 교우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 동안 함께 사역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면서 그들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은 “함께 역사하는 자들”입니다. 11절 하반절에 나오는 말씀이지요.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역사한다는 말은 힘써 일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힘써 일하는 사람들인데 혼자 힘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역사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 (신분)에 관계없이 함께 역사하였습니다.
정말 신분도 다양하고 여러 가지 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의 일에 하나가 된 것입니다.
 그 중에는 노예였던 사람도 있었어요. 누구지요? 예. 9절에 나오는 (오네시모)입니다. 그는 빌레몬의 노예였는데 주인의 재산을 훔쳐 달아났다가 로마 감옥에 가게 되지요. 거기서 바울을 만나 예수님을 믿게 되고 새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 그런가하면 10절에 나오는 바나바의 조카 (마가)는 실패자였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나바와 바울이 마가와 함께 선교여행을 하는데 마가가 중간에 포기하고 도망을 갑니다. 그로 인해서 선교에 많은 차질이 있었겠지요. 그래서 그 다음에 선교를 갈 때는 바울이 그를 데려가는 것을 반대하고 실라와 함께 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하나가 되어 그와 함께 동역하고 있습니다. 비록 한 때는 실패자요 도망자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하나가 될 때 능히 훌륭한 사역자가 된 것입니다.
 그 다음에 의사도 있었어요. 누가 의사지요? 예. (누가)입니다. 사도 바울은 치유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심지어 사람들이 그의 손수건을 가져다가 환부에 얹기만 해도 병이 나을 정도였어요. 그러니 의사가 필요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내가 치유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야. 의사 필요 없어!” 이러지 않았어요. 오히려 누가와 늘 함께 하면서 건강을 점검 받고 치료 받고 또 다른 사람도 치료해 주고 그랬던 거죠. 그렇게 함께 할 때 누가는 병을 고치는 일뿐 아니라 더 놀라운 일을 해냈는데요. 바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였습니다. 누가가 있었기 때문에 당시 선교의 역사를 우리가 상세하게 알게 된 거죠.   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당시에는 여자가 별로 존중 받지 못했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는 여인들이 얼마나 큰 일을 했는지 모릅니다. 15절에 보면 (눔바)라는 여인이 나오는데 그 집에서 교회가 모일만큼 헌신을 하고 비중 있게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 11절에 나오는 (유스도)는 할례파였습니다. 할례 받지 않은 사람은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던 파입니다. 비록 한 때 그와 같은 잘못된 가르침에 빠지기는 했지만 다시 올바른 복음 위에 서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는 인종이나 민족도 관계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개보다 못하게 여겼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이방인들을 사랑하시사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 중에서 에바브라나 누가 같은 사람은 이방인이지만 함께 동역하며 중요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남여, 직업, 신분, 민족, 심지어 과거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든지 관계없이 주님 안에서 새롭게 거듭나서 함께 주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바울은 우리 모두가 사랑받는 한 형제임을 강조합니다.
7절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아멘. 두기고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다 주 안에서 함께 구원 받고 함께 종이 된 한 형제입니다. 어떤 상황에 있든지 관계없이 우리는 다 주님의 사랑 받는 한 형제입니다. 그래서 9절에 보면 오네시모를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9절 봉독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주리라.” 아멘. 오네시모는 과거에 노예였고 도둑이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오네시모를 다시 만날 때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특별히 “오네시모는 옛날의 그 불성실한 건달이 아니라 신실한 자다. 또 너희와 똑같이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이고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우리의 한 형제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14절에 보면 누가를 가리켜서 말할 때도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라고 말합니다. “이방인이라는 것 때문에 선입견을 가지고 보지 말라. 그도 사랑 받는 우리의 한 형제다.” 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새롭게 거듭나서 한 형제가 되었습니다. 고향이 어디든지 관계없습니다. 직업이 무엇이든, 나이가 얼마든 상관없습니다. 심지어 나의 부끄러운 과거도 상관없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용서받고 새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벽을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주님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 사랑하는 한 형제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옆 사람과 인사합시다.
“집사님 사랑합니다. 우리는 한 형제입니다.”


󰊲 각기 맡은 (사명)을 따라 함께 역사합니다.
우리가 하나 됨을 말할 때 종종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 사람과 내가 성격이 같아지고, 취미가 같아지고, 심지어 감정이 같아져야 하나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 된다고 하는 것은, 성격이 다르고, 취미와 관심사가 다르지만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랑 나랑은 성격이 안 맞아. 그래서 함께 못하겠어.” 이게 아닙니다. 성격은 다르지만 사명이 하나입니다.
영혼을 구원하고, 주님의 교회를 세워 나가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이 귀한 사명에는 오히려 성격이 다르고, 재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많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이 사명으로 하나 될 때 더 놀라운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동업할 때도 그렇잖아요. 한 사람은 돈이 많은데 운영능력이 없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은 돈은 없지만 운영 능력이 뛰어나요. 이런 사람이 동업을 하면 일이 잘 됩니다. 그런데 반대로 나도 돈이 많은데 운영능력이 없고, 저 사람도 돈은 많은 데 운영능력이 없어요. 그런 사람들끼리 “야 잘 됐다. 우리 서로 비슷하니까 동업하자.” 그러면 망하는 겁니다. 서로 다른 게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사람이 사명으로 하나 되면 더 놀라운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혹시 교회 안에서도 ‘저 사람은 나랑 너무 달라’ 이런 분이 있습니까? 사명으로 하나 되면 환상적인 동역자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두기고를 보내는 목적이 나옵니다. “우리의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알게 하고, 위로하는 게 사명이에요. 또 12절과 13절에 보면 에바브로의 기도와 수고가 나옵니다. 우리 함께 12절과 13절 봉독할까요?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노니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아멘.
에바브라의 사명은 첫째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사명도 마찬가지로 기도입니다. 물론 전도하고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큰 사명이지만 전도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기도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에바브라는 어떻게 기도했지요?
➀ ‘항상’ 기도했습니다.
4장 2절에 기도를 계속하라고 했는데 그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특별히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특별새벽기도를 통해 기도를 회복하시고 항상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을 알게 되고, 기도로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기도가 우리의 능력이 됨을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➁ ‘너희’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기도한 것이 아니라 ‘교우’들을 위해 기도한 거죠. 그것도 멀리 떨어져 있는 교우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지만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인 것 같습니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기도로 하나 되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해서 세계 어디서나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저도 이번에 캐나다에 있으면서도 성도님들의 소식을 듣고, 기도해 드리고, 기도가 응답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참 감사를 드렸습니다. 서로 기도로 하나 되는 것처럼 큰 축복이 없습니다.
➂ ‘애써’ 기도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그냥 대충 한 것이 아니라 ‘애써’ 즉 ‘힘써’ 기도했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사명을 앞에 두고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핏방울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도하다가 땀이 떨어질 정도로 힘써 기도한다면 반드시 기도의 역사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에바브라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많이 수고하였다고 했습니다. 기도하다보면 하나님이 친히 행하시는 것도 있지만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주시고 지시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을 잘 행할 때 기도 응답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는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기 위함입니다. 혹시 ‘나는 기도해도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더라.’는 분이 계시다면 기도 중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순종하는 것이 수고로울 수 있지만 그 수고를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교회)가 연합하여 함께 역사합니다.
13절에 보면 에바브라가 그렇게 수고한 것은 골로새 교회 뿐 아니라 라오디게아 교회와 히에라볼리에 있는 성도들을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초보 단계에 있을 때에는 그저 내 자신과 내 가정만을 위해서 기도하고 수고합니다. 그러다가 신앙이 성장하면서 교회와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봉사하게 됩니다. 이렇게 기도와 봉사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 신앙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에바브라는 자기 교회뿐 아니라 근처에 있는 다른 교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수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6절에 보면 바울도 이렇게 권면합니다. 16절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아멘. 골로새 교회나 라오디게아 교회나 하나님 안에서 다 한 형제라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함께 배우고 연합할 때 더 크고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지방 연합으로 사경회, 부흥회, 성경학교 등을 하는데, 함께 배우는 거죠. 함께 배울 뿐만 아니라 이 지역과 나라를 위해서 함께 봉사하면 더 큰 일들을 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있을 ‘농촌선교 한마당’도 그와 같은 일들이지요. 감리교 교단적으로 주관하는 행사인데 도시와 농촌이 연계해서 농산물을 직거래하기도 하고 다각적으로 서로 돕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나 하나 잘 되려고 예수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가 넓어지고 봉사가 확산되기를 원합니다.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사명으로 하나 되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50. 우리들이 싸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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